"분식점에 왜 가냐고요? 싸고 맛있잖아요!"

 

최근 인터넷에 "분식점에서 앙드레김을 보았다"는 네티즌들의 목격담이 분식점 안에 앉아있는 그의 사진과 함께 올라왔다. 명실공히 패션계의 거장이자 한국을 넘어선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평가받고 있는만큼 '앙드레김'을 떠올리면 이름도 생소한 고급 요리만 즐겨먹을 것 같은 편견 때문이었을까.

 

그가 분식점에서 경호원들과 함께 김밥을 먹고 있는 사진은 금세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로 떠올랐고 '재밌고 신선하다' '평범한 모습이 친근하게 느껴진다'는 다양한 반응들이 속속 올라왔다.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기만한 디자이너. 하지만 그 화려함 속에 감춰진 '인간 앙드레김'은 어떤 사람일까. 솟아오르는 그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신사동에 위치한 그의 의상실을 직접 찾았다.

 

친절하게 취재진을 맞아주는 앙드레김의 첫 인상은 과연 세계적인 디자이너로서의 카리스마가 물씬 풍겼다. 하지만 '그저 식사를 하기 위해 간 것 뿐인데 왜 화제가 됐는지 모르겠다'며 머쓱하게 웃는 그의 모습은 소박한 우리네 이웃을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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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미디어다음/뉴스블로거팀]

<분식점, 자주가요>

 

"저도 그 사진을 봤어요. 전 김밥집이나 분식점에 가는 거 참 좋아해요. 일단 맛있고, 음식도 빨리 나와서 시간도 절약되고요. 무엇보다도 가격이 정말 싸잖아요. '이 가격으로 팔아서 남는 것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미안할 정도에요"

 

분식점에서 그가 가장 즐겨먹는 메뉴는 김밥과 떡국, 떡볶이라고. 하지만 눈처럼 하얀 옷을 입고 떡볶이를 먹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면 조금 아슬아슬하다. 행여나 흰 옷에 떡볶이 국물이 튈까봐 걱정되진 않는지 조금 오지랖 넓은 질문을 해보았다.


"그래서 항상 무릎에 커다란 앞치마를 깔고 음식을 먹어요. 가능하면 흰 옷에 튀면 안되니까요. 하지만 제 옷은 비싼 옷감이 아니고 면 재질이라서 국물이 튀어도 물에 바로 빨 수 있어서 편리해요. 그럴 땐 입었던 옷은 빨고, 여분의 옷으로 또 갈아입곤 하죠"


 

그가 분식점을 자주 찾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학생들' 때문이란다.


"분식점에 가면 학생들이 많아서 분위기가 좋아요. 활력이 넘치고 생동감 있다고 할까요? 저는 학생들의 꾸밈없는 순수함이 좋아요. 물론 먹고 있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그 순간만큼은 조금 쑥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발랄한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어린 학생들은 식사를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몰래 찍기도 하고 카메라를 들이대며 기념 촬영을 하자고 조르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식사를 방해받는 것만큼 불쾌한 일은 없을 터, 귀찮거나 기분 나빴던 순간도 있을 법 한데 그는 '전혀 그런 적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식사를 하고 있으면 학생들이 다가와서 사진 촬영을 부탁하는데 전 오히려 참 기뻐요. 최대한 성의껏 포즈도 함께 취해주고요. 어떤 학생들은 저와 사진을 찍기 위해서 일부러 분식점에 들어와 음식을 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는 돈도 별로 없을 학생들에게 괜히 미안해져요. 그래서 제가 학생들이 먹은 음식까지 함께 계산할 때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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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미디어다음/뉴스블로거팀]


실제로 그는 거리낌 없이 사람이 많은 곳을 활보한다. 대중들과 소통하는 게 즐겁고 기쁘다는 그다.

 

"인사동, 명동, 코엑스 같이 사람 많은 곳에 가면 많은 분들이 저를 알아보시고 싸인이나 기념촬영을 부탁하세요. 그럼 전 굉장히 기쁜 맘으로 응해드려요. 그 분들을 귀찮아 하거나 피해가는 건 옳지 않아요. 오히려 저에게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는 것 같아 기분 좋죠. 아주 어린 초등학생부터 노인분까지 저를 알고 좋아해준다는 사실이 참 감사해요. 그 순간 저도 참 즐겁고요"


<내 성대모사? 기분 좋아요!>

 

때때로 앙드레김은 코미디의 단골 소재가 되기도 한다. TV에 나오는 '성대모사' 좀 한다는 사람이면 십중팔구 그의 특이한 말투와 제스처를 흉내낸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일이지만 정작 본인은 불쾌하지 않을까.


 

"가끔은 보기 민망할 때도 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저도 기분이 좋아지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더라고요. 저를 흉내내는 코미디언들을 실제로 만나보면 그렇게 순수하고 좋은 분들일 수가 없어요. 결코 그 분들이 나쁜 뜻으로 연출하는 게 아니거든요. 또 그 분들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어하고, 그런 것이 오히려 저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 초연해질 수 있었죠. 한마디로 '모든 게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기분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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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미디어다음/뉴스블로거팀]


 

<나이는 숫자일 뿐>

 

1935년생. 어느 덧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그에게는 여전히 '순수함' '열정'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린다. 10대의 순수하고 동화적인 꿈, 20대의 환상적이고 열정적인 꿈을 그는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저는 제 나이를 의식하지 않아요.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 작품도 나이에 맞게 점잖아지고 조금은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전 오히려 최근 들어 더욱 젊은 꿈, 환상적인 열정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순수함을 잃은 작품 세계는 저에겐 의미가 없거든요. 어릴 적부터 품어왔던 아름다운 꿈과 동화적인 환상의 세계는 지금도 제 마음 속에 계속 이어지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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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미디어다음/뉴스블로거팀]

그는 일을 하지 않는 주말과 연휴가 싫다고 말한다. 그저 사람들과 함께 열심히 일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그. 대화를 하면 할수록 '세계적인 디자이너'라는 칭호 속에 숨어있는 진솔하고 따뜻한 모습에 어느 새 '인간 앙드레김'에 대한 순수한 호감도는 커져만 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스스로의 장단점을 얘기해달라는 말에 '장점은 없어도 단점은 너무 많다'며 쑥스러워하는 그에게서 최고의 실력뿐 아니라 '겸손함'까지 갖춘 진정한 거장의 모습을 보았다.



-앙드레김에 대한 진실과 오해-


▽앙드레김은 늘 흰 옷만 입는다?

 

"사람들 앞에 나설 때는 항상 흰 옷만 입어요.  전 어릴 때부터 흰 눈이 내리는 날을 제일 좋아했어요. 시골에서 자랐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마당에, 지붕에, 골목길에,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이 온통 덮여있을 때 그 눈을 밟고 다니는 게 정말 행복했죠. 그래서 전 지금도 눈오는 날이 좋고 흰색, 맑은 물, 투명한 크리스탈 같은 걸 좋아해요.물론 저도 35년 전까지만해도 여느 사람들처럼 다양한 색깔의 옷을 입었어요. 그러다 흰색이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지금까지 사계절 내내 흰 옷만 입게 된거죠. 하지만 '항상' 흰 옷만 입는 건 아니예요. 사람들 앞에 나설 일이 없는 취침시간은 예외죠. 하얀 색을 가장 좋아하긴 하지만 잠옷만큼은 프린트된 무늬나, 줄무늬를 입기도 하고 또 그 밖의 색깔을 입을 때도 있답니다"


▽앙드레김은 우리말 해침꾼이다?


"제가 외국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데 전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출신입니다. 고양군(지금의 고양시)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모두 나왔죠. 제가 영어를 많이 쓴다고 얼마 전에 '우리말 해침꾼'에 선정됐다는 기사를 봤어요. 그건 그 분들이 저에 대해서 자세히 관찰을 안하시고 내린 결론이라고 봐요. 그저 코미디언들이 재미있게 표현하려고 희화화해서 흉내낸 걸 보고 그릇된 판단을 하신 것 같아요. 전 '겸손'을 미덕으로 삼고 있지만 우리나라 고유의 역사와 언어, 문화에 대해서 한국인으로서 커다란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곧 저의 디자인 철학이기도 하고요. 코미디언들이 TV에 나와 흉내내는 것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백번 천번 잘못된 인식이에요"


▽앙드레김의 옷은 일반인들이 입기 힘들고 디자인도 모두 비슷하다?


"제가 추구하는 건 예술성과 작품성입니다. 언젠간 의상박물관에 보존돼서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수 있는 그런 옷이요. 실제로도 세계 여러 곳에서 의상박물관에 작품을 보존하고 싶다는 제안이 많이 들어옵니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세요. 수십 개의 작품을 봐도 비슷한 느낌이 들어요. 그것이 바로 피카소만의 개성이고, 독창적인 예술의 세계죠. 제 디자인 역시 마찬가지예요. 제가 추구하는 것은 한국적이고 동양적인 왕실의 분위기를 재창조하는 것입니다. 그때그때 유행하는 외국 트랜드를 모방한다면 장사는 잘될 지도 모르죠. 하지만 전 그렇게 돈을 버는 것은 하나도 부럽지 않아요. 누구나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가 있는데 다른 디자이너의 작품과 비교하는 것도 옳지 않고요. 전 오백 년, 천 년 후에도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활동했던 디자이너 앙드레김은 외국 것을 모방하느라 급급하지 않았고 한국 디자이너로서 그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추구했다' 라는 기록이 남겨지리라는 신념을 갖고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입을 수 없는 옷이라고 해서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네요. 한국인 디자이너로서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것이 저의 자부심이니까요"


인터뷰/글 : 신효정 (http://topstargirl.com)
사진 : 하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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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효정
<작은 승리자들>

"이만큼 자라준 것만으로도 정말 기특하고 고마워요. 이런 게 기적이라는 것 같아요"


지난 2005년 12월, KBS 인간극장을 통해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사연이 방영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안타까움과 감동의 눈물을 전해주었던 쌍둥이 남매 이서원(누나), 이인호(동생)가 오는 1월 6일 감격적인 첫 돌을 맞는다.


                                           

     


[관련기사] = 700g 쌍둥이 남매…피눈물로 쓴 육아일기 (2005.12.19)


[관련링크] = KBS 인간극장 '선물'


서원이와 인호는 정확히 2005년 10월 2일에 태어났다.임신 후 25주 5일만의 출산. 너무도 이른 만남이었다. 그렇게 서원이와 인호는 한창 엄마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야할 시기에 각각 710g, 770g의 미숙아로 세상에 나왔다.


태어나자마자 조그마한 인큐베이터 안에서 죽음과 사투를 벌여야 했던 쌍둥이들.18개의 합병증을 갖고 태어난 누나 서원이는 온 몸에 호스를 꽂고 지내며 710g밖에 되지 않는 몸으로 뇌수술만 열 차례를 받았다. 이후에도 신생아 괴사장염으로 인한 배수술 두 차례, 미숙아 망막증으로 인한 눈수술도 받아야 했다. 호흡기와 목에 큰 문제가 있었던 동생 인호 역시 770g의 작은 체구로 네 차례의 목 수술을 받고 그 후 배수술 세 차례, 심장수술 한 차례를 더 받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사를 오갔던 서원이와 인호였다.당시 병원에서는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포기하라는 말까지 했지만 어른 손바닥만한 작은 몸으로도 남매는 70여 일간을 인큐베이터 속에서 씩싹하게 잘 버텨주었고, 쌍둥이 남매의 엄마 허진주(26)씨와 아빠 이선우(36)씨의 아이들을 향한 지극한 사랑과 정성이 많은 사람들을 감동과 눈물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 후 1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난 4일, 곧 첫돌을 맞이하는 쌍둥이의 집을 찾았다.얼핏 보기에도 1년 전에 비해 많이 자란 모습이었다.현재 서원이의 체중은 8kg, 인호는 8.8kg이다.또래의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여전히 적은 체중이지만 엄마인 진주 씨는 "이 정도는 많이 좋아진것"이라며 미소를 짓는다.


"처음에 이유식 시작할 땐 아이들이 너무 안 먹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식탐이 강해졌어요. 특히 인호는 먹을 걸 보면 가만히 있지를 못해요"


아니나 다를까 인호가 갑자기 기자가 마시던 오렌지 주스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진주 씨가 재빨리 주스통에 빨대를 꽂아 쥐어주자 기다렸다는 듯이 꿀꺽꿀꺽 잘 먹는 인호다. 제법 잘 움직이며 기어다니는 인호와 달리 서원이는 누운 채로 많이 움직이지 못했다.


  


"서원이는 아직 몸을 못 가눠요. 뇌수술을 열 번이나 해서 그런지 기는 것도, 앉는 것도, 뒤집기도 못하고..전혀 발달이 되지 않은 상태에요". 뇌출혈과 뇌손상이 심했던 서원이는 뇌성마비 진단을 받았다. 미숙아 망막증으로 인하여 눈의 초점을 잘 맞추지 못하고 시력도 좋지 않은 상태.


인호는 몸은 가누지만 목소리를 전혀 낼 수 없다. 인호의 목에는 기도와 연결된 튜브가 붙어있다.태어날 때부터 목에 문제가 있었던 인호는 코와 입을 통해서 숨을 쉬지 못하고 기도와 연결된 튜브를 통해 성대로 숨을 쉰다. 때문에 인호는 6개월에 한번씩 기도확장수술을 받아야 한다.


  

현재로써 서원이와 인호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은 일주일에 네 번씩 꾸준히 받고 있는 재활치료. 그러나 이마저도 병원에서 호전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면역력이 약해 잦은 폐렴과 감기로 응급실을 들락거리고 며칠씩 입원하는 일이 여전히 부지기수다.


"서원이, 인호 둘 다 발달이 많이 느려요. 그래도 1년 전을 생각하면 정말 기특하고 고마워요. 평생동안 인공호흡기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거라고 했는데 이만큼이라도 잘 자라줘서 돌잔치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말끝을 흐리는 진주 씨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서원이와 인호의 아주 특별한 돌잔치>


쌍둥이는 2005년 10월 2일에 태어났지만 정상적으로 분만했다면 2006년 1월이 생일이 되었을 터.건강한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며 1월에 돌을 준비하는 이들 부부에게 쌍둥이의 돌잔치는 남다른 감회를 갖게 한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 돌잔치까지 할 수 있으리라곤 기대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많이 건강해져서 큰 탈없이 돌잔치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기쁩니다. 지금까지 잘 견뎌준 서원이와 인호가 자랑스러워요"


아빠인 선우 씨는 "이사, 사업 등 중요한 일들을 일단 돌잔치 이후로 모두 미뤄놓았다"고 말했다.


"저희 부부에게 아이들의 돌잔치는 단순한 돌잔치 그 이상의 정말 뜻깊은 행사입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1년 여 동안 돌잔치 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요. 아이들이 건강해지면 돌잔치를 꼭 해주고싶은 마음이 간절했거든요. 이제 꿈을 이루게 됐어요. 일단 '서원이와 인호의 돌잔치'라는 아주 중요한 상징적 의미가 생긴 후에 다른 모든 일들을 새롭게 시작하려고 해요"


설레는 목소리로 아이들 돌잔치 이야기를 하는 선우 씨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한다.


<너희들은 내 운명>


"솔직히, 이렇게 커다란 시련을 준 하늘을 원망해보기도 했었어요. 또,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때때로 생각하면 덜컥 겁이 나기도 하고요" 진주 씨가 그 동안 힘들었던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잡아주어도 전혀 몸을 가누지 못하던 서원이가 외할머니에게 기대어 꽤 오래 서있는 모습을 보고 금세 표정이 밝아지는 진주 씨는 천상 '엄마'였다.


                         

     '잡아줘도 힘이 없어 못서있엇는데 저렇게 서 있는건 지금이 처음이다'라며 기뻐했다.


"서원이가 저렇게 서있는 건 오늘이 처음이에요. 바로 이런 게 행복인 것 같아요. 발달이 느리지만 그만큼 감격이 두 배가 되거든요. 서원이가 처음 스스로 호흡하게 됐을때, 인호가 네발기기를 처음 했을때...그때의 감격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비록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느리지만 하나하나씩 해내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하고 행복해요"


진주 씨는 아이들을 하늘이 준 소중한 선물이자, 누군가가 자신에게 정해준 '운명'이라고 여긴다.


"지금보다 의학이 발달하면 반드시 더 좋아질 거라고 굳게 믿고 있어요.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키울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부부. 이들의 새해 소망은 오직 하나다.뇌성마비인 서원이가 조금이나마 몸을 가누게 되는 것,코로 호흡할 수 없는 인호가 목에 연결된 튜브를 떼고 편하게 숨을 쉴 수 있게 되는 것. 그렇게 아이들의 건강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지는 것이다. 여느 사람들에게는 매우 사소한 것이 이들 가족에게는 올해의 간절한 소망이 되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처럼 부부의 사랑과 정성으로 그 소원이 꼭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다.



<희망, 버리지 마세요>


-이선우, 허진주 부부의 메시지-


서원이와 인호를 낳고 병원에 다니면서 그제서야 이 땅에 미숙아로 태어나 아픈 아이들이 정말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보는 것 같아서 볼 때마다 안타깝고 가슴이 아픕니다.1년 여 전 방송이 나간 이후, 많은 분들이 걱정해주시고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셔서 정말 힘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먼 지방에서 직접 찾아오신 분도 계셨고 자신의 일처럼 성심성의껏 신경써 주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 마음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실, 방송 이후에 격려도 많이 받았지만 악플이나 오해들로 인한 상처도 그만큼 받았습니다.마음고생도 많이 했죠. 정말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을 모르거든요.그래서 서원이, 인호 돌잔치로 인해 미디어다음에서 인터뷰 제의가 들어왔을 때 처음엔 거절했습니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나의 치부일 수도 있고, 좋은 일도 아닌데 굳이 더 알려야 할 이유를 못 느꼈기에..또,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듯이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결국 인터뷰에 응했습니다.그 이유는 단 하나 바로 '희망'입니다.방송 이후 그때부터 지금까지 자신도 미숙아의 엄마라며 서원이와 인호의 상태를 메일이나 쪽지로 꾸준히 물어오는 엄마들이 많이 계십니다.


'병원에서도 포기했고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아이가 생사를 오가는데 살아만 준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는모두 마음 아픈 절절한 사연들이었습니다.그때 알았습니다.그 분들에게는 저희 아이들이 바로 '희망'이었다는 걸요.


단순히 저희 아이들의 병을 알리자는 것이 아닙니다.병원에서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했던 우리 아이들도 희망을 갖고 이만큼 잘 키웠으니까 비슷한 일로 힘들어하시는 다른 많은 분들도 힘을 내시길 바라는 마음, 그거 하나 뿐입니다.미숙아를 키우는 이 땅의 모든 부모님들 힘내세요.




 



                                                                                     

인터뷰/글: 신효정 (http://topstargirl.com)
사진: 몽구
영상: 몽치

                                                               

Posted by 신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