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할린동포 독거노인 위한 ‘끝이 없는 봉사’ | |||||||||||||
5년째 사비 털어 김장 담가주고 무료장례 130번 치러준 장례식장 주인 본인은 월세 30만원짜리 ‘사글세 삶’…“삶 자체 봉사인 사람” 평가 | |||||||||||||
미디어다음 / 글, 사진=신효정 프리랜서 기자 | |||||||||||||
경기도 안산의 한 공원에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을 낀아주머니 50여 명이 모여들었다. 공원 한 구석에 수북이 쌓여 있는 것들은 배추, 무, 고춧가루 등. 김장을 담그기 위한 재료들이다. 이는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열린 ‘사할린 동포 돕기 김장행사’의 모습. 그런데 김치 담그기에 여념이 없는 아주머니들 사이에 하얀 ‘주방장 모자’를 쓴 한 남성이 보인다.
올해 김치 담그기 행사에서는 모두 9000포기의 김장을 했다. 3일씩 세 번에 걸쳐 모두 9일간 이 많은 양의 김치를 담갔다. 동원된 인력은 100여 명. 안산의 새마을부녀회와 참봉사단이 일손을 거들었다. 이 ‘사랑의 김치’는 안산의 고향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사할린 동포 489세대에 가구당 20kg씩 나눠줄 예정이다. 그리고 인근 고아원과 양로원 아홉 곳에도 300~500kg씩 제공된다. 배추 9000포기는 모두 오 씨가 손수 농사를 지은 것이다. 농약 한 번 치지 않은 순수 무공해 배추다. 최근 ‘기생충 알 김치’ 파동 때 배추 값이 급등하자 배추를 훔쳐가는 사람까지 있었을 정도로 귀한 배추다. 이처럼 대대적인 김치 담그기 행사를 하기 위해 든 비용은 모두 합해 6000만 원 정도. 이 비용은 오 씨가 사비를 털어 마련한 것이다. 오 씨는 “먼 사할린 땅에서 온갖 고생을 하다가 고국에 돌아온 동포 노인들이 한국에서도 외롭게 여생을 보내고 있다”며 “사할린 동포 노인들이 내가 담근 김치로 밥 한 끼를 맛있게 들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일생의 대부분을 사할린에서 보내고, 2000년 2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정착한 곳이 이곳 고향마을. 처음에는 971명이 함께 살았지만, 지금은 841명만이 남았다. 그동안 130명이 눈을 감았다. 오 씨가 사할린 동포 노인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바로 이들 130명의 죽음이었다. 안산에서 장례식장을 운영하고 있는 오 씨에게 피붙이 하나 없는 동포 노인들의 외로운 죽음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던 것이다. 사할린 동포 노인들은 장례식은커녕 수의조차 없이 세상을 떠났다. 이를 보다 못한 오 씨는 이들을 위해 무료 장례를 치러주기 시작했다. 노인들에게 수입을 입혀주고 직접 염을 했다. 외로운 노인들에게 자식 노릇을 한 셈이다. 오 씨는 “평생 고국을 그리워하다가 막상 한국에 온 지 한두 달 만에 고인이 되는 분들을 보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며 “조금이나마 마지막 가는 길을 돕고자 하다 보니 장례를 치러주게 됐다”고 말했다. 이같이 결코 적다고는 말할 수 없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오 씨는 종종 주위에서 돈이 무척 많아 그 돈을 기부하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오 씨의 형편은 넉넉지 않다. 그는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인 집에서 아내와 자녀 4명과 함께 살고 있다. 그는 늘 하얀 고무신만 신고 다닐 정도로 가난에 익숙하다. 이런 형편에도 불구하고 오 씨가 남을 돕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은 것은 ‘1만 원이 생기면 1만 1000원을 봉사하는 데 써야 한다’는 그 자신의 고집, 또는 철학 때문이라고 한다.
어린 나이에 홀로 한국에 남게 된 오 씨는 거지, 건달, 노숙자 생활을 하며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간신히 유년시절과 성장기를 보냈다. 당연히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오 씨의 학력은 초등학교 4학년 중퇴다. 그는 “어렸을 때 힘든 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어려운 이웃들이 남 같지 않다”며 “배고파 본 사람이 배고픈 사람 심정을 더 잘 아는 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사할린 동포들을 돕기 전에도 여러 가지 봉사활동을 해왔다. 주위 사람들은 그를 두고 “삶 자체가 봉사인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다. 오 씨는 무의탁 노인을 위한 시설을 운영하기도 했었고, 음성 꽃동네에 수년 동안 모두 900여 벌의 수의를 무료로 제공하기도 했다. 지난 97년에는 신장 질환을 앓고 있던 생면부지의 고등학생에게 자신의 신장을 기증해 한 생명을 살렸다. 오 씨는 또 장기기증운동본부에 간과 골수를 기증하겠다는 신청도 해 놓은 상태다. 이런 오 씨의 삶을 지켜보는 가족의 마음은 편할 날이 없다. 오 씨의 장녀 영미(29) 씨는 “솔직히 불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라면서 “아버지 자신도 힘들 텐데 남의 일까지 다 떠안고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속상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영미 씨는 “그렇지만 아버지의 봉사하는 삶을 보면서 가족들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됐다”며 “지금은 가족 모두 아버지의 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 씨는 최근 그가 회장을 맡고 있는 사할린동포후원회를 사단법인으로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후원회를 사단법인화 해야 정부에 더 강력하게 사할린 동포 지원 정책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 씨는 “아직까지 사할린 동포를 지원하는 제도가 없어 동포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지금 사할린 동포를 지원하는 법안이 국회에 상정된 상태인데 꼭 통과돼서 사할린 동포 지원 대책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도 아픈 과거를 딛고 고향 땅을 찾은 사할린 동포를 돕는 후원회를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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