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틀맨’, ‘꽃미남’, ‘댄디보이’


기존의 다니엘 헤니를 표현할 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늘 깔끔하고 매너 있는 매력만점 킹카의 모습만을 보여주었던 그.

그런 그가 터프한 군인이 되어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해맑게 웃으며 또박또박 한국말로 악수를 청하는 다니엘 헤니.

예의 부드러운 그 미소는 변함 없었지만 그에게 풍기는 느낌이 전과는 사뭇 다르다.

눈빛이 좀 더 깊어지고 표정도 강인해졌다.



새 영화 ‘마이 파더’로 돌아온 다니엘 헤니는 더 이상 외모만 부각된 ‘모델’이 아닌 한층 성숙한 ‘배우’로 성장해 있었다.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연기의 자유’를 느꼈어요. 로맨틱 코미디같이 기존에 했던 연기는 각본상의 어떤 울타리 같은 것이 있어서 그 안에서만 제한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느낌이었는데, 이번 작품은 규칙이나 울타리의 제약이 없어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죠”


황동혁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다니엘 헤니와 중견배우 김영철이 주연을 맡은 영화 ‘마이 파더’는 실화를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로 아버지와 아들의 애틋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예요. 어릴 때 미국으로 입양되었던 남자가 친부모를 찾기 위해 주한 미군이 되죠”


전작들의 캐릭터에 비춰볼 때 군인으로 분한 다니엘 헤니의 모습은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부드러운 젠틀맨의 이미지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터, 군인이라는 새로운 이미지의 역할을 맡아 부담스러운 점은 없었을까.


“기존의 이미지가 강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저에게도 분명히 터프함이 내재돼 있어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죠. 군인이라는 역할은 늘 해보고 싶었어요. 제 아버지께서도 군인이시거든요. 그래서 아버지께 자료와 조언도 많이 구했고, 제가 드디어 그 역할을 맡는다는 것이 기대가 됐죠”



주한 미군이 되어 22년 만에 친부를 찾은 입양아 제임스(다니엘 헤니 분), 그러나 꿈에 그리던 아버지(김영철 분)는 사형수의 신분으로 그의 앞에 나타난다.


자신을 버렸고, 또 지금은 사형수가 돼버린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사랑, 용서와 아픔을 모두 표현해내야 하는 만큼 섬세한 연기력이 요구되는 쉽지 않은 역할이다.


“알려진 것처럼 제 어머니가 입양아셨죠. 사실, 어머니께서 어떻게 생각을 하실지 몰라 이 역할에 대한 부담이 더 컸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시나리오가 워낙 좋았고 또 어머니께 이런저런 조언을 구하고 상의를 하면서 오히려 역할에 더 몰입할 수 있었어요”


실제로 그의 연기에 대해 감독도 “다니엘 헤니가 아닌 제임스는 상상이 안 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 연기가 아닌 실제 그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는 평이다.


헤니 스스로도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며 만족스러움을 나타낸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어요. 제가 사진관 앞에서 유리를 부수고 절규하며 울부짖는 장면이었는데, 체력 소모도 많고 매우 격한 씬이라 과연 내가 가진 에너지로 이 장면을 소화해낼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주위의 다른 것들이 신경 쓰이지 않고 오직 배역에 몰입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저에겐 감동적인 경험이었죠”



그가 이번 역할을 소화해 내기 까지는 함께 열연한 김영철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김영철 선배님의 연기 지도가 큰 도움이 됐어요. 사실 연세가 있으신 대선배님들은 늘 어렵거든요. 제가 아직 존댓말에 서툴러서 실수를 하지는 않을지,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을지 걱정이 돼서요. 그런데 김영철 선배님이 연기하는 모습에 빠져들어서 저 역시도 연기가 아닌, 자연스러운 리액션이 나올 수 있었어요. 진실된 연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이죠. 이번 영화에서의 캐스팅도 완벽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도 김영철 선배님이 이번 역할을 맡게 된 것이 감사해요”


그는 영화 ‘마이 파더’가 감동적인 휴먼드라마이긴 하지만 ‘무거움’을 지향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아주 재미있는 장면들도 많아요. 영화 전체가 슬프고 무거운 분위기라면 부담이 더 많이 됐겠죠. 하지만 곳곳에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아 찍으면서도 정말 즐거웠어요. 또 그런 것들이 영화에서도 잘 표현이 돼서 더 애착이 가고요”



현재 배우로서 그의 역할은 제한적인 것이 사실이다.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기엔 언어의 장벽은 장애로 작용한다. 언젠가 백퍼센트 한국어로 연기를 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생각은 늘 한다”며 멋쩍은 듯 웃는다.


“백퍼센트 한국어로 연기를 하게 될 날이 언젠가는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저의 어색한 대사를 만회하기 위해 다른 배우들이 연기에 더 신경을 써야 할테고, 그렇다면 그 분들에게 더 부담을 지우는 격이 되겠죠. 저는 연기에 있어서 언어는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에겐 아직 서투른 한국말 보단 영어로 연기를 할 때 진실함이 전해진다고 보거든요. 그런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연기를 이번 영화를 통해 보여드리고 싶어요”


‘마치 놀이기구를 타듯 관객의 감정 폭을 이끌어 나가겠다’라고 당차게 말하는 다니엘 헤니의 모습에서 이번 영화에 대한 강한 자신감과 애정이 묻어났다.


올 가을, 관객들의 가슴을 적실 영화 ‘마이 파더’가 한층 성숙해진 ‘배우, 다니엘 헤니’로 거듭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인터뷰 현장스케치 및 네티즌에게 전하는 인사>


 


인터뷰/글: 신효정 http://topstargirl.com

사진/영상:『太陽』http://blog.daum.net/sunny2k



[화보]살인미소 다니엘 헤니 단독인터뷰 스케치





Posted by 신효정
<작은 승리자들>

"이만큼 자라준 것만으로도 정말 기특하고 고마워요. 이런 게 기적이라는 것 같아요"


지난 2005년 12월, KBS 인간극장을 통해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사연이 방영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안타까움과 감동의 눈물을 전해주었던 쌍둥이 남매 이서원(누나), 이인호(동생)가 오는 1월 6일 감격적인 첫 돌을 맞는다.


                                           

     


[관련기사] = 700g 쌍둥이 남매…피눈물로 쓴 육아일기 (2005.12.19)


[관련링크] = KBS 인간극장 '선물'


서원이와 인호는 정확히 2005년 10월 2일에 태어났다.임신 후 25주 5일만의 출산. 너무도 이른 만남이었다. 그렇게 서원이와 인호는 한창 엄마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야할 시기에 각각 710g, 770g의 미숙아로 세상에 나왔다.


태어나자마자 조그마한 인큐베이터 안에서 죽음과 사투를 벌여야 했던 쌍둥이들.18개의 합병증을 갖고 태어난 누나 서원이는 온 몸에 호스를 꽂고 지내며 710g밖에 되지 않는 몸으로 뇌수술만 열 차례를 받았다. 이후에도 신생아 괴사장염으로 인한 배수술 두 차례, 미숙아 망막증으로 인한 눈수술도 받아야 했다. 호흡기와 목에 큰 문제가 있었던 동생 인호 역시 770g의 작은 체구로 네 차례의 목 수술을 받고 그 후 배수술 세 차례, 심장수술 한 차례를 더 받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사를 오갔던 서원이와 인호였다.당시 병원에서는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포기하라는 말까지 했지만 어른 손바닥만한 작은 몸으로도 남매는 70여 일간을 인큐베이터 속에서 씩싹하게 잘 버텨주었고, 쌍둥이 남매의 엄마 허진주(26)씨와 아빠 이선우(36)씨의 아이들을 향한 지극한 사랑과 정성이 많은 사람들을 감동과 눈물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 후 1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난 4일, 곧 첫돌을 맞이하는 쌍둥이의 집을 찾았다.얼핏 보기에도 1년 전에 비해 많이 자란 모습이었다.현재 서원이의 체중은 8kg, 인호는 8.8kg이다.또래의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여전히 적은 체중이지만 엄마인 진주 씨는 "이 정도는 많이 좋아진것"이라며 미소를 짓는다.


"처음에 이유식 시작할 땐 아이들이 너무 안 먹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식탐이 강해졌어요. 특히 인호는 먹을 걸 보면 가만히 있지를 못해요"


아니나 다를까 인호가 갑자기 기자가 마시던 오렌지 주스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진주 씨가 재빨리 주스통에 빨대를 꽂아 쥐어주자 기다렸다는 듯이 꿀꺽꿀꺽 잘 먹는 인호다. 제법 잘 움직이며 기어다니는 인호와 달리 서원이는 누운 채로 많이 움직이지 못했다.


  


"서원이는 아직 몸을 못 가눠요. 뇌수술을 열 번이나 해서 그런지 기는 것도, 앉는 것도, 뒤집기도 못하고..전혀 발달이 되지 않은 상태에요". 뇌출혈과 뇌손상이 심했던 서원이는 뇌성마비 진단을 받았다. 미숙아 망막증으로 인하여 눈의 초점을 잘 맞추지 못하고 시력도 좋지 않은 상태.


인호는 몸은 가누지만 목소리를 전혀 낼 수 없다. 인호의 목에는 기도와 연결된 튜브가 붙어있다.태어날 때부터 목에 문제가 있었던 인호는 코와 입을 통해서 숨을 쉬지 못하고 기도와 연결된 튜브를 통해 성대로 숨을 쉰다. 때문에 인호는 6개월에 한번씩 기도확장수술을 받아야 한다.


  

현재로써 서원이와 인호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은 일주일에 네 번씩 꾸준히 받고 있는 재활치료. 그러나 이마저도 병원에서 호전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면역력이 약해 잦은 폐렴과 감기로 응급실을 들락거리고 며칠씩 입원하는 일이 여전히 부지기수다.


"서원이, 인호 둘 다 발달이 많이 느려요. 그래도 1년 전을 생각하면 정말 기특하고 고마워요. 평생동안 인공호흡기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거라고 했는데 이만큼이라도 잘 자라줘서 돌잔치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말끝을 흐리는 진주 씨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서원이와 인호의 아주 특별한 돌잔치>


쌍둥이는 2005년 10월 2일에 태어났지만 정상적으로 분만했다면 2006년 1월이 생일이 되었을 터.건강한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며 1월에 돌을 준비하는 이들 부부에게 쌍둥이의 돌잔치는 남다른 감회를 갖게 한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 돌잔치까지 할 수 있으리라곤 기대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많이 건강해져서 큰 탈없이 돌잔치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기쁩니다. 지금까지 잘 견뎌준 서원이와 인호가 자랑스러워요"


아빠인 선우 씨는 "이사, 사업 등 중요한 일들을 일단 돌잔치 이후로 모두 미뤄놓았다"고 말했다.


"저희 부부에게 아이들의 돌잔치는 단순한 돌잔치 그 이상의 정말 뜻깊은 행사입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1년 여 동안 돌잔치 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요. 아이들이 건강해지면 돌잔치를 꼭 해주고싶은 마음이 간절했거든요. 이제 꿈을 이루게 됐어요. 일단 '서원이와 인호의 돌잔치'라는 아주 중요한 상징적 의미가 생긴 후에 다른 모든 일들을 새롭게 시작하려고 해요"


설레는 목소리로 아이들 돌잔치 이야기를 하는 선우 씨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한다.


<너희들은 내 운명>


"솔직히, 이렇게 커다란 시련을 준 하늘을 원망해보기도 했었어요. 또,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때때로 생각하면 덜컥 겁이 나기도 하고요" 진주 씨가 그 동안 힘들었던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잡아주어도 전혀 몸을 가누지 못하던 서원이가 외할머니에게 기대어 꽤 오래 서있는 모습을 보고 금세 표정이 밝아지는 진주 씨는 천상 '엄마'였다.


                         

     '잡아줘도 힘이 없어 못서있엇는데 저렇게 서 있는건 지금이 처음이다'라며 기뻐했다.


"서원이가 저렇게 서있는 건 오늘이 처음이에요. 바로 이런 게 행복인 것 같아요. 발달이 느리지만 그만큼 감격이 두 배가 되거든요. 서원이가 처음 스스로 호흡하게 됐을때, 인호가 네발기기를 처음 했을때...그때의 감격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비록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느리지만 하나하나씩 해내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하고 행복해요"


진주 씨는 아이들을 하늘이 준 소중한 선물이자, 누군가가 자신에게 정해준 '운명'이라고 여긴다.


"지금보다 의학이 발달하면 반드시 더 좋아질 거라고 굳게 믿고 있어요.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키울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부부. 이들의 새해 소망은 오직 하나다.뇌성마비인 서원이가 조금이나마 몸을 가누게 되는 것,코로 호흡할 수 없는 인호가 목에 연결된 튜브를 떼고 편하게 숨을 쉴 수 있게 되는 것. 그렇게 아이들의 건강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지는 것이다. 여느 사람들에게는 매우 사소한 것이 이들 가족에게는 올해의 간절한 소망이 되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처럼 부부의 사랑과 정성으로 그 소원이 꼭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다.



<희망, 버리지 마세요>


-이선우, 허진주 부부의 메시지-


서원이와 인호를 낳고 병원에 다니면서 그제서야 이 땅에 미숙아로 태어나 아픈 아이들이 정말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보는 것 같아서 볼 때마다 안타깝고 가슴이 아픕니다.1년 여 전 방송이 나간 이후, 많은 분들이 걱정해주시고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셔서 정말 힘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먼 지방에서 직접 찾아오신 분도 계셨고 자신의 일처럼 성심성의껏 신경써 주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 마음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실, 방송 이후에 격려도 많이 받았지만 악플이나 오해들로 인한 상처도 그만큼 받았습니다.마음고생도 많이 했죠. 정말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을 모르거든요.그래서 서원이, 인호 돌잔치로 인해 미디어다음에서 인터뷰 제의가 들어왔을 때 처음엔 거절했습니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나의 치부일 수도 있고, 좋은 일도 아닌데 굳이 더 알려야 할 이유를 못 느꼈기에..또,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듯이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결국 인터뷰에 응했습니다.그 이유는 단 하나 바로 '희망'입니다.방송 이후 그때부터 지금까지 자신도 미숙아의 엄마라며 서원이와 인호의 상태를 메일이나 쪽지로 꾸준히 물어오는 엄마들이 많이 계십니다.


'병원에서도 포기했고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아이가 생사를 오가는데 살아만 준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는모두 마음 아픈 절절한 사연들이었습니다.그때 알았습니다.그 분들에게는 저희 아이들이 바로 '희망'이었다는 걸요.


단순히 저희 아이들의 병을 알리자는 것이 아닙니다.병원에서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했던 우리 아이들도 희망을 갖고 이만큼 잘 키웠으니까 비슷한 일로 힘들어하시는 다른 많은 분들도 힘을 내시길 바라는 마음, 그거 하나 뿐입니다.미숙아를 키우는 이 땅의 모든 부모님들 힘내세요.




 



                                                                                     

인터뷰/글: 신효정 (http://topstargirl.com)
사진: 몽구
영상: 몽치

                                                               

Posted by 신효정
 

‘노부부의 아름다운 동행’


<전신마비 아내 23년째 돌보는 정성균 할아버지>


얼마 전 전신마비의 아내를 23년 동안 한결같이 돌보고 있다는 한 할아버지에 대한 제보를 받았다.

할머니에 대한 할아버지의 정성스러운 간병으로 할아버지는 이미 동네에서는 유명인사라고 했다.

짤막하게 전해들은 사연이었지만 왠지 꼭 한 번 찾아뵙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봄기운이 완연했던 지난 4월 5일, 마침내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정성균(69) 할아버지 , 손난심(66) 할머니 댁을 찾았다.

문이 열리자 할아버지께서 반갑게 맞아주신다.

아담하고도 잘 정돈된 집이었다.

그런데 문을 열어주시자 마자 할아버지가 다시 부리나케 방으로 들어가신다.

마침 할머니를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기고 계시는 중이었는지 힘겹게 휠체어에 앉아있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점퍼를 입히고 , 두꺼운 덧버선을 몇 겹씩 신겨드렸다.

춥지 않도록 목에도 정성스럽게 스카프를 둘러주시고 몸에 연결된 소변팩도 휠체어 옆으로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팔과 어깨, 다리를 연신 주물러주신 후에야 힘겨운 한숨을 후-뱉으신다.


“이제 됐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차라도 한 잔 대접해드려야지...”

 






할아버지께서 커피를 준비하고 계신 동안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안 추우세요?”

 

다소 더운 듯한 날씨라 반소매 차림으로 실내에 들어선 기자를 보고 할머니께서 희미한 목소리로 처음 꺼내신 말이다.


“오늘 밖의 날씨 엄청 따뜻한걸요^^”


“난 너무 추운데....항상 추워서...집안에서도 이렇게 두껍게 입고 있어야 해....”



곧, 깔끔한 컵에 커피 두 잔을 내어 오신 할아버지는 인터뷰 중에도 할머니에게 내내 신경이 쓰이시는지 좀처럼 할머니께 시선을 떼지 못하며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1984년 10월 22일, 내가 날짜까지도 정확하게 기억해요. 아내에게 사고가 났던 날 말이에요”


당시 40대 중년이었던 할머니는 김장을 담글 재료를 구하기 위해 친구 분들과 춘천으로 가던 길에 사고를 당했다.

청평댐을 건너던 중 차가 마주오던 트럭과의 충돌을 피한다는 것이 그만 강물로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동승했던 사람들은 모두 사망했고 마침 지나가던 고기잡이배에 할머니만이 유일하게 구조됐다. 

그야말로 ‘구사일생’인 셈이었다.



 

“새벽 2시에야 연락을 받았어요.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글쎄 머리는 빡빡 다 깎여있고...눈은 토끼 눈처럼 빨갛게 충혈 돼서...몸은 물을 먹어 엄청나게 부어있고 말야....”


애써 담담한 말투로 당시를 회상하는 할아버지는 목이 메는 듯 잠시 말씀을 잇지 못하셨다.





그때부터 부부의 인생은 180도로 달라졌다.

할머니는 중환자실에서 8개월, 일반 병동에서 1년 2개월의 길고긴 투병 생활을 해야 했고 할아버지는 하던 사업도 접고 아내의 간병에 매진했다.

그러나 결국 돌아온 것은 절망적인 전신마비 판정이었다.


“그때까지는 전신마비라니..상상도 못했지. 그저 치료 잘 받으면 나아질 줄만 알았어요....얼굴과 목을 제외하고는 그 밑으로는 전혀 움직이지도 못하고 감각도 없다고 하는데....정말 앞이 깜깜하더라고요”


한 동안 끔찍한 고통과 절망의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다.

한 번은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맡긴 채 열흘 동안 홀로 사라져버린 적도 있었다.

“그 때는 내가 내가 아니었어요...정말 내 생을 포기하려는 그런 심정이었죠.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갈등을 하고...아마 그 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할아버지를 붙잡아 준 것은 ‘부부의 연’이라는 단단한 줄이었다.


“아내와 결혼하던 순간을 생각해봤어요. 그런데 부부 서약에 이런 구절이 있잖아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한결같이 사랑하겠노라고...그 서약을 떠올려보니 나 혼자 잘살아봤자 절대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한 번 맺은 부부의 연인데...끝까지 내가 짊어지고 갈 운명이라고 받아들였죠. 그렇게 아내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며 하루하루 지내다보니 어느 새 2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네요”


    <사고 전 젊은 시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


   <사고가 난 지 약 10여 년 후에 부부가 함께찍은 사진. 이도 벌써 10년이 넘은 사진이 되었다 >

 


매일 아침 아내를 관장해주는 일부터 시작하여 씻기고, 식사를 준비해서 먹여주고,

근육이완제와 변비약을 시간 맞춰 먹이고,  책을 시키고,

근육 경직 때문에 수시로 온 몸을 주물러주고,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두 시간마다 몸의 위치를 바꿔줘야만 하는 일은 이제 할아버지에게는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

때문에 밤에도 단잠을 자는 것은 포기한 지 오래이다.


    < 커다란 달력에는 할머니를 위한 간병 일지가 꼼꼼하게 적혀있다>

 

 

힘들지 않으시냐는 물음에 오히려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당뇨가 있거든...그래서 운동을 좀 해줘야 좋다는데 아내 덕분에 나도 열심히 몸 움직이고 운동해서 건강해진다고 생각해요. 짜증내면 한도 끝도 없는 건데...내 건강을 위해서 움직이게 해준다고 바꿔서 생각하면 아내에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예요?


    <인터뷰 중에도 시종일관 할머니를 챙기시고 경직된 몸을 주물러주는데 여념이 없다>


이런 할아버지이기에 주위에서는 ‘천사’로 불리지만 정작 할아버지 본인은 ‘부담스럽다’고 손사래를 치신다.


“부부간에 한 쪽이 아프면 당연히 간병하는 거지 뭐가 대단하다고...젊어서 고생만 시킨 아내인데 내가 당연히 돌봐야죠. 만일 내가 다쳤다면 아내도 나에게 이렇게 했을 거예요”


이쯤 되자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첫 만남과 연애시절이 궁금해졌다.


“어릴 적에 시골 한 동네에서 자랐어요. 당시 난 고등학생이었고 아내는 중학교 3학년이었지. 내 여동생의 선배였는데 집에 자주 놀러오곤 해서 내가 수학도 가르쳐주고 하면서 정이 들었죠.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동생으로만 생각했는데...어느 순간 참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참...그 땐 정말 예뻤지....물론, 지금도 예쁘지만”


당시를 회상하는 할아버지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흘렀다.

분위기를 조금 밝게 할 수 있는 기회였다.

가장 기뻤던 순간을 여쭤보자 자녀들이 결혼하던 순간을 꼽으셨다.


“아내의 이 불편한 몸으로도 4남매 중 3명을 모두 출가시켰어요. 그 순간이 제일 기뻤던 것 같아요. 아이들도 고생 많이 했거든요. 큰 딸은 다니던 대학까지 그만두어야 했고요..그게 항상 미안했는데 다행히 다들 좋은 배우자 만나 출가하여 자리 잡았으니 기쁘죠. 이제 하나 남은 막내만 장가가면 한시름 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불편한 몸으로도 할머니는 4남매 중 3자녀를 모두 출가시켰다 >


자식들 이야기를 하시는 할아버지의 표정이 행복해보였다.

지금 행복하시냐는 물음에도 역시 주저 없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신다.


“주위에 출세한 사람들도 많죠. 그런데 난 이렇게 사는 게 지금 정말 행복해. 명예나 권력이 없어도 우리 부부 함께 있다는 것, 그래서 서로 의지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해요. 더 뭘 바라겠어요. 고통도 다 이겨낼 수 있는 것, 그게 사랑입니다. 사랑하니까 된 거예요. 사랑 없이 사람이 살 수 있나? 우리 부부 남은 생 실컷 사랑하다가 죽는 날까지 함께 가는 게 저의 작은 소망입니다”


 

   <"두 분 사진 좀 찍을께요"라는 기자의 주문에 할머니의 머리부터 곱게 빗겨주시는 할아버지>

   <조금만 웃어달라는 주문에 할머니께선 힘드신 와중에도 엷은 미소를 지어주신다>


    <두분 산책 나가시기 직전에 한 컷^^>


<매일 할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산책시키는 일 역시 일과 중 하나>



   <바깥에 나오니 조금 기분이 좋아지신 듯 보이죠?^^>

<산책하러 나오면 동네 단골 분식점에서 김밥과 잔치국수 드시는 걸 좋아하신다는 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지금처럼 두분 사랑 변함없이 오래도록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Reported by 신효정 (http://topstargirl.com)



Posted by 신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