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대가리 하고는...쥐새끼들같이”
“썅, 그 잘난 형사 아드님 때문이야?”
고운 입에서 쉴 새 없이 거친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반쯤 감은 듯한 눈빛엔 카리스마를 넘은 서늘함마저 감돈다.
국내 최초로 거대 소매치기 조직의 이야기를 다뤄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무방비도시’.
그 중심에 그녀, 백장미가 서 있다.
'무방비도시‘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것은 단연 백장미 역을 맡은 손예진의 파격적인 팜므파탈로의 연기변신이다.
“백장미는 거대 소매치기 조직을 이끄는 리더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불사하는 무섭고도 차가운 악녀예요"
밝은 모습으로 명랑하게 인터뷰를 하고 있는 그녀는 예의 그렇듯 여전히 사랑스럽고 순수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런 얼굴에서 독하디 독한 악녀의 모습이라니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손예진 역시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배역을 고사했었다고 한다.
“사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어보고 못하겠다고 했어요. 그 정도로 저에겐 버거운 캐릭터였고요. 그러던 중 우연히 다시 시나리오를 읽게 됐고, 그 때 백장미에 대한 매력을 느꼈어요.
이 여자가 단순히 강하기만 하고 섹시함을 무기로 남자들을 유혹하기만 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차가운 이면엔 다양한 아픔도 갖고 있고 알듯 모를듯한 인간적인 면들이 보이더라고요. 좀 더 복합적인 감정이 섞인 깊이 있는 연기를 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러다보니 욕심이 생겨 도전하게 됐어요“
처음 도전하는 악역인 만큼 연기하는 데 어려움도 많았다. 수없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 평소에 쓰지 않는 거친 말투와 은어들은 연기하기 힘든 요소로 작용했다.
“모든 게 저에겐 어려움이고 풀어야 할 숙제였죠. 손짓, 눈빛, 몸짓, 표정..어느 것 하나도 쉽지 않았고 모두 새로운 시도였어요. 지금까지 맡은 캐릭터에는 어느 정도 손예진이라는 사람, 저의 모습이 묻어났다면 이번엔 아예 저 자체를 완전히 버리고 없앤 후 새로운 사람을 창조해야했죠. 그게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완전히 백장미에 몰입하기 위해 그녀가 기울인 노력은 대단했다. 극중 백장미가 입고 나오는 모든 의상을 원단부터 디자인까지 직접 관여하는 한편, 리얼한 소매치기 연기를 위해 실제 전직 소매치기 기술자로부터 고난도의 기술을 배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백장미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큰 노력이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백장미는 포커페이스예요. 내면에 많은 것들이 소용돌이쳐도 겉으로 결코 드러내지 않죠. 소매치기 조직을 이끄는 리더로서 아무도 자신을 무시할 수 없게 해야 하고 늘 강한 모습만 보여야하니까요. 저 역시도 연기자다 보니까 살아가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부딪치며 그 속에서 행복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는데 대중들 앞에서는 항상 웃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점에서 감정을 숨겨야만 하는 백장미와 비슷한 심정이 느껴져요“
백장미라는 캐릭터를 연구하면서 손예진은 악역이지만 점점 그녀에게 동화될 수 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물론 소매치기라는 범죄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겠지만 백장미는 어릴 적부터 사랑보다는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불사해야 한다는 치열함을 먼저 배웠어요.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누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그녀를 보면 동정과 연민이 느껴져요”
파격적인 연기변신을 한 손예진. 그만큼 ‘무방비도시’가 배우로서 손예진에게 미칠 영향은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손예진은 “시간이 지나봐야 안다”고 신중하게 대답한다.
“작품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시간이 지나야 나타난다고 봐요. 그 당시엔 알지 못하지만 작품이 끝나고 1,2년이 지나봐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죠. ‘무방비도시’도 최소한 1년은 지나야 저에게 어떤 의미었는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겠죠”
오는 10일, 영화 개봉을 목전에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손예진은 “어느 정도 욕심을 버렸다”며 객관적인 관객의 평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사실 그렇죠. 잘했다는 얘기를 듣고싶은게 모든 배우의 욕심일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그냥 ‘손예진이 저렇게 변신을 하기위해 노력을 했구나, 저 배우는 정말 연기를 열심히 하는구나’라고 봐주셨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예요”
그저 ‘배우 손예진이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면 족하다는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에선 연기에 대한 열의와 진중함이 묻어났다.
2008년의 시작을 ‘무방비도시’로 화려하게 출발한 그녀는 “올해도 바쁜 해가 될 것 같다”고 말한다.
“많이 바쁠 것 같아요. 일단 새로운 영화가 곧 들어갈 것 같고 올해는 드라마도 한 편 하게될 것 같고요. 어찌됐던 조금 더 다양한 장르에서 이제까지 보여드리지 않은 모습을 계속 시도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새로운 연기에 대한 끝없는 갈망이 있는 한 손예진은 관객들에게 ‘진짜 연기 잘하는 배우’로 기억될 것이다.
다음 작품에서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카멜레온 같은 그녀의 변신이 궁금해진다.





































